도쿄 재판의 '소수의견', 팔 판사는 왜 A급 전범 무죄를 주장했나?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전쟁을 일으킨 추축국의 전쟁 범죄를 단죄하기 위한 국제군사재판이 열렸습니다. 유럽에서는 뉘른베르크 재판이, 아시아에서는 '극동국제군사재판', 일명 '도쿄 재판'이 진행되었죠. 이 도쿄 재판에서 일본의 주요 전쟁 지도자들은 A급, B급, C급 전범으로 기소되었고, 그중 A급 전범은 '평화에 대한 죄'(침략 전쟁 계획, 준비, 개시, 수행 등)를 저지른 이들로 규정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연합국 측 판사들이 유죄 판결을 내린 가운데, 유독 A급 전범 전원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길고 상세한 반대의견서를 제출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인도 출신의 라다비노드 팔(Radhabinod Pal) 판사입니다. 그의 주장은 당시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고, 오늘날까지도 역사학자, 법학자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팔 판사가 왜 그런 주장을 펼쳤는지, 그의 논리는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1. 도쿄 재판과 A급 전범이란?
도쿄 재판(1946년 5월 ~ 1948년 11월)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잔혹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일본의 전쟁 지도자 및 책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연합국 주도로 열린 재판입니다.
- A급 전범: '평화에 대한 죄'로 기소된 자들. 주로 침략 전쟁을 계획, 준비, 개시, 수행한 정치 및 군사 지도자들이 해당됩니다.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이 대표적입니다.
- B급 전범: '통상적인 전쟁 범죄'(포로 학대, 민간인 학살 등)를 저지른 자들.
- C급 전범: '인도에 반한 죄'(고문, 비인도적 행위 등)를 저지른 자들.
도쿄 재판에서는 총 11명의 판사가 참여했으며, 다수의견은 A급 전범 28명 중 25명에게 유죄(사형 7명, 종신형 16명, 유기징역 2명)를 선고했습니다. (재판 중 사망 2명, 정신이상으로 소추 면제 1명)
2. 라다비노드 팔 판사, 그는 누구인가?
라다비노드 팔(1886~1967)은 인도의 법학자이자 판사였습니다.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 지배하에 있었지만, 그는 국제법 분야에서 명망 높은 학자였습니다. 캘커타 대학교 법학 교수, 국제연합 국제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그의 법철학은 자연법 사상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가 식민 지배를 경험한 국가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서구 중심의 국제 질서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점은 그의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3. 팔 판사의 '소수의견': A급 전범 전원 무죄 주장의 핵심 논리
팔 판사는 1,235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반대의견서를 통해 A급 전범으로 기소된 모든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죄형법정주의 위배 (Nulla poena sine lege - 법률 없이는 처벌도 없다): 팔 판사는 '평화에 대한 죄'라는 개념이 재판 당시에는 실정 국제법으로 확립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전쟁을 계획하고 수행한 행위가 당시 국제법상 명백한 범죄로 규정되어 있지 않았는데, 사후에 만들어진 법 개념으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대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소급효 금지의 원칙). 이는 "법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는 근대 형법의 기본 원리입니다.
- 승자의 정의 (Victor's Justice) 비판: 그는 도쿄 재판이 승전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승자의 재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전승국의 전쟁 행위(예: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등)는 심판 대상에서 제외된 반면, 패전국인 일본의 행위만을 단죄하는 것은 공정성과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정의는 승자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법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국가 행위와 개인 책임의 문제: 전통적인 국제법상 전쟁은 국가 간의 행위로 간주되며, 개인에게 직접적인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했습니다. 팔 판사는 국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한 개인을 '평화에 대한 죄'로 처벌하는 것의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지적했습니다.
- 침략 전쟁의 정의 모호성: '침략 전쟁'의 정의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당시 일본의 전쟁이 자위권 행사였는지, 아니면 제국주의적 팽창이었는지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중요한 점: 팔 판사가 A급 전범의 무죄를 주장했다고 해서, 그가 일본의 전쟁 범죄 자체를 옹호하거나 B급, C급 전범(개별적인 잔학 행위)까지 면죄부를 주려 한 것은 아닙니다. 그의 비판은 주로 A급 전범에게 적용된 '평화에 대한 죄'라는 죄목의 법적 정당성과 재판 과정의 공정성에 집중되었습니다.
4. 팔 판결의 영향과 논란
- 일본 우익의 아전인수: 팔 판사의 판결은 일본의 일부 우익 세력에게는 '도쿄 재판의 부당성을 입증하는 근거' 또는 '일본의 전쟁은 침략이 아니었다는 면죄부'로 왜곡되어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야스쿠니 신사 내 유슈칸 입구에 그의 공덕비가 세워진 것도 이러한 맥락입니다.
- 국제법 학계의 논쟁: 그의 주장은 국제형사법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논쟁점을 던졌습니다. 이후 '평화에 대한 죄'는 '침략범죄'라는 개념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 로마 규정 등에 포함되며 국제법상 범죄로 확립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팔 판사의 문제 제기는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었습니다.
- 식민지배 경험국의 시각 반영: 팔 판사의 주장은 서구 열강 중심의 국제 질서와 법 해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으며, 식민 지배를 경험했던 국가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결론: 역사의 법정에서 계속되는 질문
라다비노드 팔 판사의 소수의견은 도쿄 재판의 역사적 의미와 법적 정당성에 대해 오늘날까지도 심오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이 일본의 전쟁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의도였는지, 아니면 순수한 법학자적 양심에 따른 법리 해석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판결이 '승자의 정의'에 대한 경고, 죄형법정주의의 중요성, 그리고 국제법의 발전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다양한 법철학적 논점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팔 판사의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배척하기보다는, 그가 제기했던 문제의식과 법 논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통해 전쟁 범죄 처벌과 국제 정의 실현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과거의 재판을 넘어, 현재와 미래의 국제 질서와 법치주의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