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엔 아스피린, 감기엔 헤로인" - 100년 전, 감기약으로 팔렸던 마약의 기막힌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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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만약 약국에서 '헤로인'을 살 수 있었다면?
"머리 아플 땐 아스피린, 감기 걸렸을 땐 판피린"
우리에게 익숙한 이 광고 문구처럼, 우리는 증상에 맞는 약을 약국에서 쉽게 구매합니다. 그런데 만약 100여 년 전, 약국에서 "기침이 심하신가요? 그럼 헤로인을 드세요"라고 권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믿기 어렵겠지만,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오늘날 가장 악명 높은 마약 중 하나인 '헤로인(Heroin)'이 한때는 기침과 감기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기적의 신약'으로 불리며 전 세계 약국에서 팔려나갔습니다. 이 기막힌 역사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제약 회사는 어떻게 마약을 감기약으로 팔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부터 그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영웅의 탄생: 모르핀보다 강력하고 안전하다?
이야기는 19세기 말 독일의 거대 제약회사 '바이엘(Bayer)'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바이엘은 1897년 아스피린을 개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회사였습니다. 그들은 아스피린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대박' 아이템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연구원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모르핀(Morphine)'이었습니다. 양귀비에서 추출한 모르핀은 매우 강력한 진통 효과를 가졌지만, 중독성이 심각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바이엘의 화학자 펠릭스 호프만(아스피린을 개발한 바로 그 사람)은 모르핀의 중독성은 줄이면서 진통 효과는 유지하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모르핀에 특정 화학 반응(아세틸화)을 가했고, 그 결과 '디아세틸모르핀(Diacetylmorphine)'이라는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데 성공합니다.
바이엘은 이 신물질을 동물과 자사 직원들에게 실험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모르핀보다 진통 효과가 무려 2배 이상 강력했고, 특히 당시 만연했던 결핵이나 폐렴으로 인한 극심한 기침을 억제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초기 실험에서 모르핀 같은 심각한 중독 증상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바이엘은 이 신약에 '영웅적인(Heroic)'이라는 뜻을 담아 '헤로인(Heroin)'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모르핀 중독까지 치료하는 기적의 약'이라는 환상적인 마케팅과 함께, 헤로인은 1898년 화려하게 시장에 데뷔합니다.
2. '기적의 감기약'에서 '악마의 마약'으로
헤로인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의사들은 기침, 감기,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헤로인을 처방했습니다. 약국에서는 의사의 처방 없이도 누구나 헤로인을 살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을 위한 '헤로인 기침 시럽'까지 판매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헤로인을 복용했던 환자들이 약을 끊지 못하고 계속해서 약을 찾는, 즉 '중독'되는 사례가 속출한 것입니다.
바이엘의 초기 판단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헤로인은 몸속에 들어가면 다시 모르핀으로 변환되었습니다. 기존 모르핀보다 지용성이 높아 뇌에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중독성은 모르핀보다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모르핀 중독을 치료한다'던 약이 사실은 '슈퍼 모르핀'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 헤로인 중독자가 급증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각국 정부는 뒤늦게 헤로인의 위험성을 깨닫고 판매를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1924년 헤로인의 모든 의학적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바이엘 역시 1913년에 헤로인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기적의 신약'이자 '영웅'으로 불렸던 헤로인은 불과 15년 만에 인류 최악의 '악마의 마약'으로 전락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3. 우리가 이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두통엔 아스피린, 감기엔 헤로인"이라는 제목은 단순히 과거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넘어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 과학 기술의 명과 암: 새로운 과학 기술과 신약은 인류에게 큰 혜택을 주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위험을 동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 검증의 중요성: 충분한 임상 시험과 장기적인 관찰 없이 상업적 성공에만 눈이 멀었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비판적 사고의 필요성: 당시 의사와 대중들은 거대 제약회사의 마케팅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전문가나 권위 있는 기관의 주장이라도 맹신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약을 복용하기 전에 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부작용을 확인하는 것은, 어쩌면 헤로인과 같은 과거의 수많은 시행착오가 남긴 소중한 교훈 덕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