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된 법 하나가 미국을 망친다? '존스법(Jones Act)'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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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푸에르토리코, 그런데…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를 덮쳤습니다. 섬 전체가 폐허가 되고, 수많은 이재민이 식량과 구호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코앞까지 외국의 구호 선박들이 도착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은 항구에 들어오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상황의 중심에는 '존스법(Jones Act)'이라는 100년 넘은 낡은 법 하나가 있었습니다. 대체 이 법이 무엇이기에,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구호의 손길마저 막아선 것일까요? 오늘은 미국의 해운 산업을 지키는 '방패'이자, 동시에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족쇄'라 불리는 존스법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존스법(Jones Act)이란 무엇인가?
존스법은 1920년에 제정된 미국의 '해상무역법(Merchant Marine Act)'의 한 부분입니다. 그 핵심 내용은 아주 간단하고 강력합니다.
"미국 내 항구에서 다른 미국 내 항구로 화물을 운송하려면, 반드시 '미국에서 건조'되고, '미국인이 소유'하며, '미국인 선원이 승선'한 '미국 국적'의 선박만을 이용해야 한다."
즉, 미국 내 연안 운송은 100% 미국산 배와 미국인 선원만으로 해결하라는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 법안입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오렌지를 하와이로 보내려면, 오직 이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미국 선박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멕시코나 캐나다 선박은 물론, 한국이나 일본의 훨씬 효율적인 선박도 절대 이용할 수 없습니다.
2. 왜 이런 법을 만들었을까?: '안보'라는 명분
존스법의 탄생 배경에는 '국가 안보'라는 명분이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전시 물자 수송에 필요한 자국 선박과 숙련된 선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에 상원의원 웨슬리 존스(Wesley Jones)는 "평시에 자국의 해운 산업과 조선업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 시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선박과 선원을 즉시 동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 법을 만들었습니다. 즉, 존스법은 자국 해운업을 유지하여 비상시를 대비하는 '국가 안보의 방패' 역할을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3. 100년의 그림자: 존스법이 낳은 문제점
하지만 100년이 흐른 지금, '안보'라는 명분은 빛이 바래고 심각한 부작용만 남았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 살인적인 물류비: 존스법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미국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는 비용은 한국이나 일본보다 4~5배 비쌉니다. 미국인 선원의 인건비 역시 훨씬 높습니다. 이 모든 비용은 고스란히 운송비에 전가되고, 최종적으로는 미국 소비자들이 비싼 가격으로 물건을 사야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 기이한 운송 루트: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물건을 보낼 때, 존스법을 따르는 비싼 미국 배를 이용하는 것보다, 외국 선박에 실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것이 더 싼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심지어 하와이나 알래스카, 푸에르토리코 같은 섬 지역은 외국에서 물건을 수입하는 것이 본토에서 가져오는 것보다 저렴한 기현상이 발생합니다.
- 재난 대응의 발목: 서론에서 언급한 푸에르토리코 사례처럼, 자연재해나 비상사태 발생 시 신속한 구호품 전달을 막는 치명적인 장애물이 됩니다. 외국 선박의 긴급 지원을 받으려면 대통령이 '존스법 적용 면제'를 선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 미국 산업 경쟁력 약화: 보호의 우산 속에서 미국 조선업과 해운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완전히 도태되었습니다. 혁신 없이 안주하게 만들어 오히려 산업 전체를 퇴보시켰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결론: 폐지 논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심각한 문제점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존스법을 폐지하거나 대폭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존스법은 100년이 넘도록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2025년 6월 17일(현지시간) 미국 의회에 따르면 존스법을 폐지하는 내용의 '미국의 수역 개방 법안'(Open America's Waters Act)이 지난 12일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발의됐다. |
그 이유는 해운업과 조선업 관련 노조 및 이익 단체의 강력한 로비 때문입니다. 그들은 존스법이 폐지되면 수많은 미국인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폐지를 결사반대하고 있습니다. '안보'라는 명분과 '일자리'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얽혀,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존스법은 보호무역주의가 어떻게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00년 묵은 이 낡은 법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지켜보는 것은, 세계 경제와 무역의 미래를 이해하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