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율 10,000%의 비밀, '곳간에 현금'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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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 유보율이 10,000%래! 현금이 엄청 많은가 보다!"
주식 투자를 하다 보면, "유보율이 높은 우량 기업"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됩니다. 실제로 네이버 증권이나 DART에서 재무 정보를 보다 보면, 유보율이 5,000%, 10,000%, 심지어 수만 %에 달하는 기업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많은 초보 투자자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와, 이 회사는 자본금보다 현금을 100배나 더 쌓아뒀구나! 절대 망할 일 없는 초우량 기업이다!" 만약 이런 생각을 하셨다면, 당신은 유보율에 대한 가장 크고 치명적인 오해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오늘, '유보율'이라는 숫자의 진짜 의미와 그 속에 숨겨진 함정을 낱낱이 파헤쳐 드립니다.
1. 유보율이란 무엇인가? (회사의 누적 성적표)
유보율(Retained Earnings Ratio)은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 중, 배당 등으로 주주에게 돌려주지 않고 회사 내부에 쌓아 둔 돈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비율입니다.
유보율 (%) = (잉여금 ÷ 자본금) × 100
- 자본금: 회사를 처음 설립할 때 주주들이 출자한 '기초 자본', 즉 '종잣돈'입니다.
- 잉여금: 회사가 창사 이래 꾸준히 벌어들인 이익에서 배당금 등을 지급하고 남은 '누적 이익'입니다.
[쉽게 이해하기: 용돈 기입장 비유]
부모님에게 1만 원의 '종잣돈'(자본금)을 받아 저금통을 시작했다고 합시다.
매달 5천 원의 용돈을 받아 1천 원은 과자를 사 먹고(배당), 4천 원씩 10달 동안 저금통에 모았습니다.
- 자본금 = 1만 원
- 잉여금 = 4천 원 × 10달 = 4만 원
- 유보율 = (4만 원 ÷ 1만 원) × 100 = 400%
즉, 유보율 400%는 "종잣돈 대비 4배의 이익을 내부에 쌓아두었다"는 의미로, 회사가 오랫동안 꾸준히 이익을 내왔다는 '역사적인 이익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2. 치명적인 오해: "유보율 = 현금 보유량"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나옵니다. 많은 사람이 '내부에 쌓아 둔 돈(잉여금)'을 '금고에 쌓여있는 현금'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완전히 틀린 이야기입니다.
회사는 벌어들인 이익(잉여금)을 현금으로 쌓아만 두지 않습니다. 그 돈으로 새로운 공장을 짓고(유형자산), 신제품 연구개발에 투자하며(무형자산), 다른 회사를 인수하기도(투자자산) 합니다.
즉, 잉여금은 이미 공장, 기계, 특허권 등 다양한 형태의 '자산'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재무상태표에서 '잉여금'은 자본 항목에 기록되는 회계상의 숫자일 뿐, 회사가 실제로 보유한 현금은 '자산' 항목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계정을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유보율이 10,000%라도 당장 쓸 현금이 부족한 회사도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3. 그래서 유보율,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양날의 검)
유보율은 높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낮다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기업의 상황과 함께 입체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긍정적 신호: '곳간이 넉넉하다']
- 재무 안정성: 높은 유보율은 회사가 오랫동안 꾸준히 이익을 내왔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외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재무 구조를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 주주환원 잠재력: 곳간에 곡식이 많으니, 언제든 주주들에게 쌀을 나눠줄(배당, 무상증자)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무상증자'는 유보율이 높은 기업만이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입니다.
- 성장 잠재력: 빚을 내지 않고도 내부 자금만으로 신규 사업에 투자하거나, 좋은 기업을 M&A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부정적 신호: '돈을 굴릴 줄 모른다']
- 투자 비효율: "돈을 벌었으면 투자를 해서 더 큰돈을 벌어야지, 왜 쌓아만 두는가?"라는 비판이 가능합니다. 특히 성장성이 둔화된 기업의 높은 유보율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성장 정체'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 소극적인 주주환원: 높은 유보율은 반대로 말하면 '배당에 인색한 회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들과 나누기보다 회사 내부에 쌓아두는 것을 우선시하는 경영진의 방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론: 유보율,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유보율은 그 자체로 기업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정답'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업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결과'일 뿐입니다.
따라서 현명한 투자자는 유보율 숫자만 보고 환호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 먼저, 유보율이 높은 기업을 찾아 재무 안정성을 확인합니다. (1차 스크리닝)
- 그다음, 이 회사가 쌓아둔 이익으로 미래를 위해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지, 배당은 꾸준히 늘리고 있는지 등을 추가로 분석하여 그 숫자의 '진짜 의미'를 파악합니다.
'유보율'이라는 돋보기로 기업의 과거를 읽고, 다른 지표들과 결합하여 미래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현명한 투자의 시작입니다.